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성립은 고대사의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한 체제 변화 이상의 복잡한 정치적·사상적 갈등을 마주하게 됩니다. 본 글에서는 이 전환기의 중심 인물인 키케로(Cicero)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통해, 체제 변화의 본질과 역사적 의미를 분석합니다.
1. 로마 공화정의 기본 구조
기원전 509년 왕정을 폐지한 후, 로마는 원로원(Senatus)과 집정관(Consul)이 중심이 되는 공화정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권력 분산과 임기 제한은 독재 방지를 위한 장치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귀족 중심의 과두 정치로 변질되었습니다.
이후 마리우스 vs 술라, 카이사르의 등장 등을 거치며, 정치적 무력화와 내전이 반복되었습니다.
2. 키케로: 공화정의 수호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정치인이자 철학자, 웅변가로서 공화정 이념을 지키려 했던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법치주의, 원로원의 권위, 시민의 자유를 강조하며 독재 권력의 등장을 비판했습니다.
그의 주요 저작인 《국가론》(De Re Publica), 《법률론》(De Legibus) 등은 고대 정치철학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중세 및 계몽주의 정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카이사르에 반대하다 암살 이후 정치적 입지를 잃었고, 결국 안토니우스와의 권력 다툼 속에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3. 아우구스투스: 제정 로마의 설계자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후에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불리는 그는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후계자로,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고 제정 로마를 열었습니다.
형식상 공화정의 틀을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군사력, 재정권, 종교권을 집중하며 사실상의 황제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 프린켑스 체제(Principatus): “최초 시민”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권력을 은근히 독점
- 문화 정책: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통해 아우구스투스를 로마의 구원자로 이미지화
- 행정 개혁: 속주 체계 정비, 도로망 확장, 군제 개편
4. 역사학적 관점에서의 공화에서 제정 전환
이 전환은 단지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정치 권력의 구조적 재편이었습니다. 키케로는 이성적 법과 전통에 기반한 이상을 지향한 반면, 아우구스투스는 현실적 안정과 질서를 우선시했습니다.
따라서 두 인물의 대비는, 오늘날의 정치 체제 논의(이상주의 vs 현실주의)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5. 결론: 체제 변화, 그리고 인간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제정의 시작은 단지 과거의 정치사가 아닙니다. 권력의 집중과 분산, 이상과 현실, 법과 힘 사이의 갈등은 현대 정치에서도 반복됩니다.
역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키케로와 아우구스투스를 단순히 ‘패배자’와 ‘승리자’로 나누기보다는, 각자의 철학과 시대적 선택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통찰하는 역사학의 본질입니다.